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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를 그리며

한맛 2024. 10. 8. 22:06

과테말라를 그리며

 

과테말라를 떠나오기 전 두 달 전부터 나의 재능(?)을 계발하기 위하여 유화를 시작하였다. 요즘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무엇이든 생각이 났을 때 시작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걸 깨닫는데 수십 년이 걸린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유화지만 그 때 처음 그렸던 작품이 워낙 욕심이 많아서 어려웠기도 했지만 귀국 준비하랴 벌려놓은 큰 행사가 있어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완성을 하지도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삿짐 싸다가 유실되고 말았다. 첫 작품이라서 가져 오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깝다.

 

 

귀국하여 첫번째로 그리고 있는 작품(40.5x31.5cm, 아직 미완성이다. 바구니의 세부묘사가 쉽지 않아서 고민하고 있는 중)

 과테말라에서 떠나 오면서 유화도구를 모두 놓고 왔기에 아직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날 남대문시장에 들릴 일이 있었는데 마침 유화도구를 파는 가게가 있어 이것 저것 도구를 샀다. 회사 근처에 있는 교보문고 한쪽 코너에도 붓, 스케치북, 캔버스 등이 있어 가끔씩 들러 캔버스를 샀다.


과일바구니는 과테말라 전통 천으로 만든 접시받침 위에 올려 있다. '초짜'에게는 모든 것이 어려웠지만 바나나의 표면의 질감을 표현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사진을 보고 그렸기 때문에 같은 오렌지라도 빛을 받지 않는 앞의 오렌지는 어두운 주황색으로 표현되었으며, 배경은 주황색으로 하였는데, 이는 실제 배경과 과일 바구니의 색상 대비와 과테말라의 전통적인 색상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파파야는 여러번 고쳐 그렸지만 아직 미완성이다. 

 

* 이 블로그 글을 쓴 후 나중에 완성시킨 정물화. 액자에 유리까지 끼워넣어서 배경을 고치고 싶은데 이젠 어찌할 수가 없다.


 


두번째로 선택한 그림은 과테말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꽃인데 이름을 잘 모르겠다. 이 그림은 2009년 8월 초에 아띠뜰란에 가서 찍은 것이다.(18x25.5cm)

 


과테말라에서 찍었던 사진들 중에서 유화로 그릴 만한 것을 찾아 보았는데 의외로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장면들을 많지 않았다. 이것이 나의 사진 실력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반성하며 앞으로 유화 작품을 그릴 수 있는 장면을 생각하며 사진을 찍으리라 다짐하였다. 과테말라의 풍경은 우선 이국적인데다가 색상이 화려하여 매우 인상적이어서 나의 실력을 조금은 감춰줄 수 있을 듯 하다.   



2008년 10월 중순, 어머니를 모시고 Coban으로 휴가를 갔을 때, 아침 일찍 호텔 정원에 이슬을 머금은 Ave de Paraiso(극락조)라는 꽃을 사진으로 담았던 것을 그렸다.


이 그림은 두 번째 그림을 그리다가 생각대로 되지 않자 싫증이 났을 무렵, 단숨에 밤을 꼴딱 새우며 새벽까지 그렸다. 물론 나중에 세부분을 다시 그렸으며, 아직도 이슬과 꽃의 세부를 미완성인 채로 남겨 두었다. 유화에 대해서 제대로 배운 것이 없어 색 혼합과 그리는 기법을 알지 못하여 고전을 하고 있으며, 완성을 하기가 너무 어렵지만, 아직 지도를 받을 화실을 찾지 못했다.

 

* 이 사진은 나중에 이 블로그 글에 추가시켰다. 마찬가지로 액자에 유리가 끼워져있어서 더 이상 고칠 수가 없다.



* 이 사진은 나중에 이 블로그 글에 추가시켰다.


또또니까빵(Totonicapan)의 구두닦이 소녀

내 생각에는 서양 사람보다는 동양 사람이, 어른보다는 아이를 그리기가 어렵다. 서양 사람들이나 어른은 이목구비가 뚜렷하지만 동양사람이나 아이는 상대적으로 윤곽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풍경화야 대충 그려도 잘 모르겠지만, 인물화는 조금만 위치가 틀려도 전혀 달라지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쉬운 풍경화를 놔두고 굳이 인물화를 그리는 것은 어짜피 어려운 대상을 선택해야 더 실력이 늘어날 것이며, 내 마음을 끌어 당기는 것이 인물화인걸 어떡하랴.

 



대여섯번 뜯어 고쳤지만 그 소녀의 총명하고 밝은 모습을 화폭에 옮길 수 없어서 고민이다.

업무 때문에 성탄절을 앞둔 2008년 12월 20일 무렵에 케찰테낭고에 출장을 갔을 때, 그 인근에 있는 또또니까빵에 들렀다. 작은 여인숙에서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1시간 남짓 차를 달려 갔는데, 들판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려서 연중 13~27℃인 과테말라시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또또니까빵은 또또니까빵주의 주도(州都)이지만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이라서 그런지 내게는 더욱 과테말라 다왔다. 적당히 주차해놓고 시장골목을 지나 시청앞에 다다르니 많은 원주민들이 나와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지만 특별히 하는 일도 없었다. 그 중에서 가장 내 시선을 끌어당긴 이 소녀는 구두닦이 오빠와 같이 다니는 꽤나 남루한 행세를 하고 있었는데, 구두를 닦으면 1께찰(125원)이었다. 그러나 이 소녀의 얼굴에는 전혀 그늘이 없었고 순간 순간 그 표정은 매우 행복해 보였다. 그 눈의 총기는 나를 사로 잡아서 내내 그 소녀를 따라 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나중에 20께찰을 손에 쥐어 주었다. 이 그림은 벌써 5개월 가량 그리고 있지만 그 소녀의 총기를 담아 낼 수 없어 여러번 그림을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2008년 11월 주말, 과테말라시에서 70Km정도 떨어져 있는 San Andres Itzapa에 축제가 열렸을 때 교회 안에서 찍은 장면

나는 인물을 줌으로 당겨 스냅사진을 찍는 것을 즐겨한다. 대개 과테말라의 축제일에는 한량들이 술에 푹 젖게 되는데, 이날 교회 밖에서 젊은 청년 두 명이 내게 자꾸 치근 거렸다. 사진 한 장을 찍어 줬더니 기분이 좋아서 가버렸고, 교회 안에 들어와 200mm 줌렌즈로 신도들이 예배드리는 장면을 찍었다. 사진들이 화질이 매우 좋고, 다양한 모습의 원주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이 그림도 그 중의 하나인데, 눈매를 그리는데 가장 어렵고, 아직도 미완성인 상태이다. 그림은 마음이 동(動)해야 그리지, 일이 되면 금방 싫증이 나게 마련이다.
 


근엄한 코프라디아의 한 사람. 스케치와 노랑색, 주황색으로 밑그림을 그렸다.(18x25.5cm) 

매년 12월 20일경, 치치카스테낭고(Chichicastenango)에서는 축제가 벌어지는데, 이 축제(Fiesta)를 준비하는 이들은 원주민 가운데서도 가장 보수적인 '코프라디아(Cofradia)'라 불리는 신도단들이다. 이들은 외국인이라고 친절하게 봐주는 것도 없고, 이들을 대상으로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해서 넉살좋은 나도 이들에게는 접근전을 벌이지 못하였었다. 사진을 뒤지다 보니 이 코프라디아 단원이 내 카메라에 찍혔던 것이 있었다. 이들의 복장은 다른 원주민과 달리 독특해서 금방 알아볼 수 있다.

* 이 사진은 나중에 이 블로그 글에 추가시켰다.



초벌 색상을 칠한 다음에 배경으로 가면춤을 추는 장면을 그리려고 하다가 마음에 안들어서 중단했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신의 그림에 혼을 집어 넣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내가 그린 그림을 누구에게 선뜻 줄 수가 없겠다. 내가 그림을 그려보니 남이 그린 그림의 가치가 귀중한 줄 알겠다. 함부로 남의 그림을 평가하는 것도 삼가야겠다.

산티아고 사카테페케스(Santiago Sacatepequez)의 할머니 그림(초벌, 18x25.5cm)
* 이 사진은 나중에 이 블로그 글에 추가시켰다.

 

* 이 사진은 나중에 이 블로그 글에 추가시켰다.

 

2024.10월에 덧그린 산티아고 사카테페케스의 할머니. 2024.10.18~23까지 안양아트센터에서 개최되는 '빛색미술전'에 출품하였다.

 

과테말라에서는 매년 11월 1일은 망자(亡者, 죽은자)의 날(Dia de Todos los Santos)이라는 축제일인데, 우리나라의 한식과 흡사하다. 산티아고 사카테페케스에서는 인근의 숨팡고(Sumpango)와 마찬가지로 이 망자의 날에 연을 날리는 전통이 있는데, 망자의 날이 2주 지난 후에 이곳에 들렀더니 아직도 공동묘지에서 연을 날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장에서 스냅사진을 찍으려고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이 할머니가 내 레이다망에 걸렸다. 원주민들의 전통 의복은 천연 염료를 사용한 매우 화려한 색상이다.


또또니까빵(Totonicapan)의 할머니(40.5x31.5cm)

 

* 나중에 완성한 그림을 이 블로그에 포함시켰다.


 
앞의 구두닦이 소녀와 마찬가지로 또또니까빵에서 인상파로 소문난 할머니 한 분이 있었으니, 이 할머니이시다. 스케치한 얼굴에 색깔을 칠 했다가 마음에 안들어 덧칠하였다. 이 캔버스는 벌써 걸레가 되었다. 원래 구두닦이 소녀를 그리려다가 여러번 실패하여 샌드페이퍼로 유화물감을 긁어 냈지만, 캔버스에 두 군데나 구멍이 나고, 너덜너덜 엉망이다. 버리려다가 아까와서 그 위에 덧칠하다보니 궁여지책으로 그림에 프레임을 그려 넣었다.

이 그림은 그림 속의 할머니가 그림 밖의 현실 세계로 나왔다가 다시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테마로 잡은 것이다. 사실 이 할머니는 과테말라 또또니까빵에서 살고 있으면서 해외에는 한번도 가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사진에 담겨서 한국에 왔고, 또 내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충분히 한국이라는 현실 세계에 와 있는 것이다. 이제 그림을 그리면 할머니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캔버스의 왼쪽 위와 아래에 구멍이 난 것은 또또니까빵의 어려운 사회생활을 묘사하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 할머니는 두건을 쓴 모습이 그냥 걸친 것이 아니라 거울을 보고 잘 동여 매신 것을 보면 예술 감각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제주도에 다녀온 장면을 담은 그림 등 몇 점의 유화작품이 더 있는데, 아직 한 점도 완성시킨 것은 없다. 어쨌든 나중에 나이 들어 할 일이 없을 때,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취미활동이렸다.

 관련글 :

- 과테말라 화실 방문(http://blog.daum.net/rhein/15842877)

- 막다른 동네 또또니까빵(http://blog.daum.net/rhein/15842860)

- 또또니까빵 Totonicapan의 구두닦이 소녀(http://blog.daum.net/rhein/15842861)

 
(2010년 2월 15일, 서울에서)

 

2010-02-15 13: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