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생은 시골에서 태어난 덕분에 자연과 더불어 자라났다. 수정같이 맑은 시냇물 속의 놓인 돌을 살며시 들어내면 가재나 새우가 어린 고사리 손 끝을 피해 냅다 뒷걸음질로 달아났고, 물에 잠긴 축대 틈에 손을 집어넣을라치면 화들짝 놀란 붕어가 손 안에 들어오곤 했다.
타닥거리며 타들어가는 마른 나뭇가지 위에서 빨갛게 변해가는 가재, 메뚜기와 근육을 쭉 뻗은 개구리 뒷다리는 동네 꼬마들에게 중요한 단백질의 공급원이었다. 아무데서나 먹고 뛰어놀다 보면 때때로 뜻하지 않게 설사가 나오거나 똥을 참지 못 할 경우에는 적당한 곳에서 배설을 하고 똥꼬에 붙은 잔챙이는 주변의 눈에 띄는 자갈로 처리하고 살았다.
그 당시에는 화장지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집에서도 볏짚 같은 것을 사용했었으니 똥꼬가 제대로 대접을 받았을 리가 없고 손에서는 구린내가 났고, 그 덕에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이나 촌충을 뱃속에 넣고 살았다. 손등이 갈라지도록 추운 겨울에는 똥꼬의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목욕은 설날에나 하는 행사였으니까..
그때에는 왜 그리 설사가 자주 났었는지, 원. 한 밤중에 참다 참다 못참을 것 같으면 형이나 동생을 깨워 뒷간(화장실) 밖에 세워놓고도 캄캄한 재래식 변기통 밑에서 빨간손이 올라와 고추를 떼어 갈까봐 안절부절하며 대충 떨구고 도망나오곤 했었다. 어느날 약장사 선전을 듣고 나서 범생은 온갖 기생충이 다 자기 뱃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했고, 똥꼬가 자주 간지러웠던 것은 요충의 왕성한 번식활동 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는 범생의 똥꼬도 신문을 읽게 되면서(신문지를 화장지로 쓰게 되면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장실과 처갓집은 멀리 있어야 한다고 들어 왔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은 우리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왔고, 화장실이 방문을 넘어온 다음부터 더 이상 빨간 손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돌멩이나 지푸라기 대신 하얗고 보송보송하며 향내까지 나는 화장지가 항문을 부드럽게 핥고 지나가면 나머지를 비데가 깔끔하게 처리해 주는 시대에서 살고있는 것이다.
중동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햇볕이 너무 뜨거워 썩을 것이 거의 없어 전염병도 없는 편이다. 특히 무슬림들은 종교의식 때문에 항상 손과 항문 주위를 물로 닦고 청결하게 유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동사람들은 치질이 없다고 하는데 충분히 근거가 있는 말인 듯하다. 내가 중동에서 근무를 할 때 공중 화장실의 바닥에 물이 담겨 있는 작은 그릇을 볼 수 있었다.
사진 : 과테말라 안티구아의 커피점에서 시킨 에스프레소
인도 사람들은 대개 아침 일찍 먼저 여성들이 제각기 스텐레스 통을 들고 들판으로 나가서 볼 일을 보는데 화장지 대신 통에 든 물로 밑을 닦는다. 여성들이 일을 보고 돌아오면 이번에는 기다리던 남성들이 몰려 나가서 여성들과 같은 방법으로 ‘모닝 똥’의 아침 의식을 치룬다. 그들은 오른손을 포크로, 왼손을 영구적인 화장지로 사용하기 때문에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고 있다. 10억이 넘는 인도 국민들은 비데를 가장 먼저 사용해온 지혜로운 민족이며, 화장지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세계 환경보호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비데(Bidet)는 18세기경 프랑스에서 사회에 만연해 있던 매독, 임질 등 성병을 퇴치하기 위하여 개발된 일종의 여성 국부 세정기가 원조인데, 비데의 등장으로 이들 질병을 현저히 낮추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가정에 비데가 설치되어 있어 다른 개념으로 남녀 불문하고 항문주변을 청결하게 유지하여 국민건강이 더욱 개선되었다.
공중 화장실에는 비데가 없는 경우가 많다. 범생은 이러한 문제점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가능한 집에서 배설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만 가끔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에는 미리 화장지에 물에 적셔서 비데대신 응급처치를 하는 깔끔을 떨고 있다.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항문(學文?)을 열심히 닦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데, 범생은 이를 잘 따르고 있는 것이다.
똥을 쌀 때에는 반드시 오줌도 함께 나오게 된다. 범생은 오줌을 안 누고 똥만 싸보려는 노력과 연구를 수십년간 해왔지만 아직도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왕 배설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참에 오줌 이야기도 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여성들은 생리구조상 어쩔 수 없이 앉아서 소변을 보아야 하는데, 남성들은 서서 할 수 있다.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가장 정확한 사격자세가 ‘엎드려쏴’이며, 그 다음은 ‘앉아쏴’이고, ‘서서쏴’ 자세가 가장 부정확한 자세라는 것을 다 안다. 당연히 화장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집에서야 서서 쏘거나 엎드려 쏘거나 상관할 바 아니지만 다른 집을 방문했을 경우에는 앉아쏴 자세를 취하는 것이 지켜야 할 예의라고 범생은 강력히 주장한다. 그 집의 주부가 손님이 오기 전에 화장실을 깨끗이 청소해 놓았을텐데, 나중에 그 주부가 자신의 오줌파편을 닦아내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창피할까? 그렇기 때문에 앉아쏴를 해야하며 평소에도 자기 집에서 앉아쏴 자세를 취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화장실은 이제 더 이상 지저분하거나 가능한 빨리 뛰쳐나와야 할 장소가 아니라 은은하게 클래식 음악이라도 틀어놓고 잠시 철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나만의 소중한 공간이기도 하며, 식탁과 버금가게 중요한 우리의 건강과 미용을 책임져 주는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려면 똥과 오줌을 잘 가리고 틈나는 대로 항문을 잘 닦아야 한다.
예수께서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우리의 몸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우리를 더럽힌다고 말씀하셨다. 자연스러운 것은 더러운 것이 아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음식도 아니고 그 부산물인 똥도 아니며, 우리 혀끝에서 나오는 추잡하고 더러운 생각을 드러내는 말과 행동이다.
사진 : 과테말라 알따 베라빠스(Alta Verapaz)주의 산장에서의 아침식사
똥은 은밀한 곳에서 싸지만 그 냄새는 순식간에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것과 같이 비밀스러운 곳에서 모사를 꾸미더라도 그 생각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그 행동을 통하여 비밀이 드러나기 때문에 당사자 혼자만의 비밀일 뿐이고 이미 주변에서 다 아는 공공연한 사실일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지구 반대편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끝>
취미활동/끄적끄적
2007-12-07 12:5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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